"사람의 자식 된 자로서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할아버지가 근엄하게 해설했고 그것은 가부장의 말이었다.
감히 내 말을 부정하는 것이냐는 질문과도 같았다. 말은 우리를
'마치 ~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 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 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어린 슬아는 선택해야 했다. 속을까 말까. (9p)
. 이슬'는 과대평가반읍으로써 강제로 조금씩 더 부지런해졌다. 어름 거나 자정 무렵엔 뭔가를 완성하긴 한다 (20p)
누군가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수치스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은 기록으로 남지 않나. 기록된 글이 얼마나 세상을 떠돌며 이리저리 오해될지 복희는 두렵다. 작은 오해라 해도 말이다. 복희는 그런 것이 내키지 않는다. 댓글 따위 안 남겨도 상관없다.
많은 사람이 복희처럼 인터넷을 사용한다면 세계가 지금보다
좋아질지도 모르겠다고 슬아는 생각한다. 자신도 복희처럼 보는 건 많고 쓰는 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집 바깥 사 람들의 이야기를 잔뜩 보고 들은 뒤 집안사람들에게만 공유하 고 싶다고도 생각한다.(29p)
. 딸 에게는 주인의식이 있다. 손님처럼 살지 않는다 (41p)
모든 청중이 슬아만큼이나 유구한 이야기를 표고 있기 때 문이며, 누구든 진정으로 듣는 상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57)
그가 수락하는 일들은 다섯 가지의 주요 동기 중에서 최소 두 가지를 충족하는 일이다. 돈, 재미, 의미, 의무, 아름다움, 한 가지만 충족하거나 아무것도 충족하지 않는 일은 빠르게 거절한다. 그는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안 하는 게 좋은 일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 88p
것이다! 책을 읽어주다가 훌쩍거리 는 젊은 복희 옆에서 어린 슬아가 무럭무럭 조숙해졌다. 슬아는 어른도 약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배웠다. 113
그들에게 외면받고 남겨진 자리에서 슬아는 한 가지 중대한 것
실을 상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신문에 실리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책이 여러 권 팔린매도 말 이다. 무신경한 인터뷰어도 배배 꼬인 악플러도 찬사를 보내는
•독자들도 사실 진자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숙회와 남의가 크 렇듯 자신 앞의 생을 사느라 분주할 테니까.그것을 기억해낸슬 아의 마음엔 산들바람이 분다. 관심받고 있다는 착각, 주인공이 라는 오해를 툴툴 털어내자 기분좋은 자유가 드나든다. 슬아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익숙한 책을 집어든다. 펼치면 모서리 점 힌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난 늘 동물로부터 배우지.
'왜'란 질문을 하지 않는 법을.
가령'왜 책을 만드나'는 질문 따위.
필요도 없고, 하더라도 답이 너무 간단해.
이보게, 자넨 책을 왜 만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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