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적 분석의 적절한 초점은 마음-세계라는 쌍, 최종적으로 우리가 보게 될 것으로서 자기-타자-세계의 삼중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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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현상학자에게 현상학의 과제는 경험적이고 사실적인 특수성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을 특징짓는 본질적 구조, 이 경험과 구조의 상관관계, 이 둘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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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생활세계를 주위 세계, 더불어 있는 세계, 자기 세계라는 세 영역에 대한 해석으로 기술하고, 세계를 경험하는 이로서의 현존재는 언제나 이미 타자들과 함께 있는 존재임을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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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의 유명한 언급에서 하이데거는 현상학의 구체적인 과제가 우선 대개 보이지 않게 감춰진 대로 있는 것을 열어 밝히는 것이라고 부장한다. 실제로 우리에게 현상학이 필요한 이유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현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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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의 과제는 세계, 주체성, 상호주관성을 그 고유한 연결 가운데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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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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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의는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등의 이론을 객관화함으로써 남김없이 설명될 수 있는 대상들, 세계 안의 대상들로 우리를 환원하려 한다. 그것은 자연과학의 방법이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의 유일한 수단을 제공하고, 자연과학이 수용하는 용어로 포착할 수 없는 존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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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메를로-퐁티의 주장대로 우리는 우리의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지식이 신체적으로 고정된 1인칭 관점에서 발생하며, 이러한 경험적 차원이 없다면 과학은 무의미할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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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차원에서 발현하는 세계의 근원적 경험을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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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가 세계에 대해 우위성을 가지지는 않으며, 진리가 인간의 내면성에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세계에 존재하고, 오직 세계에 거주함으로써만 그나 그녀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에 내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현상학적 반성으로 드러난 주체성은 감춰진 내면성이 아니고 세계와의 관계를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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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히 나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에 대해서도 존재한다. 타자들이 단순히 그들 자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존재하는 것처럼, 주체는 자기-이해나 자기의 세계 이해에 있어 독점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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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의 과제는 세계, 주체성, 상호주관성을 그 고유한 연결 가운데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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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세계의 관계는 너무나 근본적이고 명백하고 자연스럽기에 우리는 보통 그것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무시된 명백함의 영역이 현상학이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상학의 과제는 세계의 다른 영역에 대한 새로운 경험적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적 탐구에 의해 전제된 세계와의 기초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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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계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맹목성과 사유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일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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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계에 관해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소간이라도 어느 정도 세계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메를로-퐁티가 우리의 세계-내-존재에 대한 분석이 현상학적 환원을 전제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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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인 것의 풍부함을 포착하려는 바람 때문이지, 현사실성을 추상화하고 무시하려는 욕망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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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는 주체가 대상에 도달하는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주체의 존재가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즉 주체는 자기-초월 그 자체이며,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을 향함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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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을 지각의 비판적인 (자기-)반성이라고 특징짓는다. 적어도 그 자신만 가지고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반성은, 달리 표현하자면, 끊임없는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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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항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고쳐져야 할 결함이나 단점이 아니라 본질적인 특징 중 하나다. 현상학은 견고하고 융통성 없는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에 대한 경이이자 끊임없는 운동이다.